📘  적당히 불편하게, 김한솔이 외 6명

그 당시 내가 적어 냈던 ‘미래’는 내게는 오지 않을 까마득한 다른 세상이었다. 환경 파괴 주범은 우리 세대지만 피해자는 분명 다른 세대일 거라고 은연중 믿으며 한 글자, 한 글자 방심하며 적어냈다.

/ 내일도 실패하겠지만, 김한솔이


생각보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중요한 것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부족함은 물건이 아니라 대개 마음에서 들통 났다.

/ 내일도 실패하겠지만, 김한솔이

 

📘  진실의 흑역사, 톰 필립스

 

물론 요즘 허튼소리가 넘쳐나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 모두 이러한 현상에 크든 작든 이바지하고 있다. 누구나 근거 없는 루머를 남에게 전해본 적 있고, 기본적인 사실 확인도 하지 않고 공유 버튼이나 리트윗 버튼을 클릭해본 적 있다. 그런 것들이 우리의 개인적 편향에 뭔가 잘 맞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 들어가는 글


우리가 옳을 수 있는 경우의 수는 극히 제한되어 있지만, 틀릴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무한에 가깝다는 것이다.

/ # 거짓의_기원


하지만 거짓이 진실보다 전파되기 유리한 이유는 전파 속도의 차이 때문이라기보다는, 또 진실이 신발을 빨리 못 신어서라기보다는, 거짓의 규모와 가짓수 자체가 너무나 방대하기 때문이다. 거짓말도 수천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거짓말이란 현실에 부합해야한다는 제약이 없으니 존재할 수 있는 가짓수 자체가 엄청나게 많다. 그래서 어마어마한 적자생존 경쟁을 통해 가장 강력하고도 생존력이 높은 놈이 출현한다. 그 좀비 같은 거짓말들은 죽지도 않고 끝없이 살아난다.

/ # 거짓의_기원


그에 비하면 진실은…… 뭐라 할까, 좀 지루하다. 크기도 애매하고 색깔도 애매하고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으면서도 속을 알 수 없는 녀석이 덩그렁 가만히 앉아 있다. 좀 따분할 뿐 아니라 굉장히 속 터진다.

/ # 거짓의_기원


이렇게 보면 진실이란 어떤 단일한 실체라고 할 수 없다.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목적지를 향한 길고 짜증나는 여행쯤 된다고나 할까.

/ # 거짓의_기원


거짓말은 교묘하고 섬세하며 분석적인 전문 기술로서, 우리의 가장 큰 문제는 그게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개소리다.

/ # 거짓의_기원


우리가 무언가를 참이라고 믿고 싶으면, 우리 뇌는 그 진위를 가리는 일에 굉장히 낮은 우선순위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싶은 이유는 우리의 정치관과 잘 맞아서일 수도 있고, 우리가 가진 편견에 들어맞아서일 수도 있고, 아니면 단순히 소망을 충족해줘서일 수도 있다. (‘혹시 내가 스페인에서 파는 복권에 당첨됐을지도 몰라. 구입한 적은 없지만’하는 수준의 허황된 소망일 수도 있다.) 이유가 무엇이든 사람들은 어떤 사실을 믿고 싶으면 뭔가 구실을 만들어서 허황된 주장도 그럴싸하게 포장하곤 한다. 주장에 들어맞는 증거만 취하고, 어긋나는 증거는 산처럼 쌓여 있어도 해맑게 무시한다.

/ # 거짓의_기원


우리는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정말 싫어한다. 우리 뇌가 그걸 질색한다. 그리고 각종 인지 편향 때문에 자기가 잘못 짚었을 가능성을 좀처럼 인정조차 하지 않으려 한다. 거짓에 속았음을 용케 깨닫는다 해도 각종 사회적 압력 때문에 자신의 오류를 숨기고 싶어 한다. 구라의 마수에 일단 걸려들고 나면 빠져나오려는 의지를 잃기 쉽다.

/ # 거짓의_기원


언론이란 서로 마구 베끼는 습성이 있어, 앞서 설명한 ‘개소리 순환고리’를 형성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릇된 정보가 한번 어느 신문에 실리면, 사정을 잘 아는 누군가가 신속히 반박하지 않는 한 나머지 신문에도 모두 실리는 게 보통이다.”

/ # 가짜_뉴스의_시작


전화와 구글이 있는 오늘날도 어떤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음’을 확인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까다로운 일이다.

/ # 가짜_뉴스의_시작


세계 곳곳에서 부정을 폭로하고 암흑 속에 한 줄기 빛을 비추려는 일념으로 구금과 파멸과 죽음마저 무릅쓰는 동료 언론인들의 모습은 내게 매일같이 감화를 준다. 그들은 영웅이다.

/ # 허위_정보의_시대


한마디로 인간사란 본래 어수선하고 난잡해서, 아무리 작은 사건이라도 몇 시간 안에 진상을 파악해 800단어로 깔끔하게 압축해낸다는 건, 솔직히 말해 생각만큼 쉽지 않다.

/ # 허위_정보의_시대


자고로 인간의 특기가 하나 있다면, ‘이렇다 할 이유 없이 공황 상태에 빠지기’ 아닌가.

/ #허위_정보의_시대


그러나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 훗날 일반적으로 알려지고 믿어진 경우는 기억에 전혀 없다. 때로 진실의 일부가 알려지는 일은 있었지만, 전부가 알려지는 일은 결코 없다. 설령 알려진다 할지라도 분명하게 이해된 경우는 거의 없었다.

/ # 허위_정보의_시대


“진실의 문제는 대체로 불편한 데다가 따분하기 일쑤라는 것이다. 인간의 심리는 뭔가 더 재미있고 위안을 주는 것을 추구한다. 욕조의 실제 역사가 어떻게 되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것을 파헤치는 일은 끔찍한 작업일 테고, 그렇게 고생해봤자 나오는 건 아마 일련의 평범한 사건들일 것이다.”

/ # 허위_정보의_시대


마치 대학교 휴학생들이 많이 그러듯, 외국에 잠깐 나갔다가 진정한 자아를 발견했다고나 할까.

/ # 사기꾼_열전


그런 믿음은 아주 강한 힘을 발휘한다. 오늘날까지도 희대의 사기꾼이라면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 # 사기꾼_열전


우리는 말로는 늘 정치인들이 더 정직해지면 좋겠다고 하지만, “아이고, 제가 사고 한번 크게 쳤습니다. 이번에 많이 배웠고 다음부터는 더 잘하겠습니다” 하고 솔직하게 나오는 정치인이 있다면 국민들이 딱히 칭찬해줄 것 같지는 않다.

/ # 정치인의_거짓말


1956년, 제국 시대는 저물어가고 있었는데 영국은 그 이별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이별에 대처하는 동서고금의 검증된 공식대로 ‘이불 뒤집어쓰고 폭식하면서 헤어진 연인을 욕하는 노래 듣기’나 했으면 좋았을 텐데, 영국은 그냥 전쟁을 벌이기로 했다.

/ # 정치인의_거짓말


인류사에서 가장 오래된 문자인 수메르어 쐐기문자로 기록된 이 점토판들은,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고객 불만’ 사례다.

/ # 장사꾼의_거짓말


우리는 목격자 수가 많을수록 목격담의 신뢰도도 올라간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꼭 그렇지가 않다.

몽테뉴가 말한 ‘거짓의 무한한 마당’ 위에서 수많은 사람이 진실을 오도하는 사례들은 이 책에서 이미 숱하게 살펴보았다. 언론은 거짓말만 하고, 지도 제작자는 날조하고, 사기꾼은 속여먹고, 정치인은 기만하고, 장사꾼은 바가지 씌우고, 돌팔이 의사는 사람 잡는다. 하지만 정말 뿌리 깊은 거짓말은 따로 있다. 남들이 우리에게 하는 거짓말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하는 거짓말이다.

/ # 흔한_집단_망상


우리는 스스로를 엄청나게 잘 속인다. 착각도 잘하고, 귀도 얇고, 대세를 거스르기 두려워한다. 그래서 사회 전체가 개소리 순환고리에 빠지는 현상이 일어난다. 거듭되는 보도를 접하다 보면 ‘뭔가 정말 있긴 있다’는 생각에 무게가 점점 쏠리고, 그러다 보면 사람들이 차츰 알아서 ‘자발적 기만’을 저지르는 것이다. 애초에 다 허구였을지 모른다는 가능성은 아무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 # 흔한_집단_망상


우리가 만들어낸 괴물들은 과거에 갇혀 있지 않다. 우리와 발맞추어 나란히 걸어왔다.

/ # 흔한_집단_망상


기억력이 좋은 독자라면, 내가 2장 첫머리 쯤에서 “이 책에서 앞으로 위키피디아 내용을 습관적으로 복사해 붙이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약속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뭐라고 사과의 말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다. 거짓말이었다. 미안하다.

/ # 맺는 글


물론 우리가 반쪽짜리 진실과 애매한 거짓말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는 건 맞다. 세상은 복잡하고 말이 안 되는 데다가, 세상 돌아가는 걸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우리 뇌는 처음부터 그렇게 생겨먹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위기는 아니다. 세상은 원래부터 항상 그랬다.

/ # 맺는 글


우리가 거짓에서 진실로 조금이라도 더 다가가려면 필요한 자세가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기겁하지 말자는 거다. 우리는 항상 개소리 속에서 살 수밖에 없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감시하고 견제하는 것뿐이다. 그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 # 맺는 글


다음번에 뭔가 희한한 얘기를 인터넷에서 공유하기 전에, 노력을 조금만 기울여보는 거다. 단 몇 초면 된다. 출처를 확인해보자, 구글에 쳐보자. 너무 그럴듯해서 수상하지는 않는지, 잠깐만 생각해보자.

/ # 맺는 글


말이 나온 김에 또 강조하고 싶은 게, 우리 자신을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아무리 스스로 진실만을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자존심에 이끌려 어떤 것이 사실이길 속으로 바라게 되기 쉽다. 아닌 게 아니라, 사람은 자기가 정직하다고 생각할수록, 자신의 그런 편향에 대한 경각심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다음번에 어떤 정보의 출처를 확인할 때는, 이렇게 스스로 물어보자. 이 정보가 내 개인적 편향에 딱 들어맞는 건 아닌지? 나는 이 정보를 최대한 의심하면서 바라보고 있는 게 맞는지? 이런 태도를 사회 전체로 확장할 필요가 있다.

/ # 맺는 글


정보의 뜰에서 잡초를 뽑아내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꽃도 심어야 한다.

/ # 맺는 글


그런 노력이 통한다는 믿음을, 그리고 그런 노력이 중요하다는 믿음을 잃지 말아야 한다.

/ # 맺는 글

 

 

📘  모든 순간의 물리학, 카를로 로벨리

블랙홀의 열은 세 가지 언어 [양자, 중력, 열역학]으로 쓰인 로제타스톤(Rosetta stone)입니다. 이 비석은 현재 누군가가 자신의 암호를 풀어 정말 시감의 흐름이 무엇일지 말해줄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공간은 물질이 있는 곳에서 곡선을 이룹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 첫 번째 강의_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론


“빛이 가득한 상자가 있다고 상상해봅시다. 그 상자에서 짧은 순간 동안 광자만 빠져나오게 하면…”

/ 두 번째 강의_양자역학


아인슈타인이 죽었을 때 그의 가장 큰 경쟁 상대였던 닐스 보어는 감동적인 존경심을 표했습니다. 그리고 몇 년 지나지 않아 보어 역시 사망하자 누군가 그의 사무실에 걸려 있던 칠판을 사진으로 찍었습니다. 이 칠판에는 그림이 하나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아인슈타인의 사고실험에서 언급된 ‘빛이 가득한 상자’였지요. 보어는 마지막까지 아인슈타인과 경쟁하고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평생 품었던 의혹을 풀지 못했습니다.

/ 두 번째 강의_양자역학


과학은 무엇보다 시각적인 활동입니다. 과학적 사고는 우리가 예전과 다른 방식으로 사물을 ‘볼 줄 아는’ 능력이 있어야 성장합니다.

/ 세 번째 강의_우주의 구조


아주 잔잔한 바다를 가까이에서 보면 파도가 거의 멈춘 듯 가볍게 치고 있는 것처럼, 이 세상을 형성하고 있는 입자들의 장도 작은 층을 이루며 떠다닙니다. 상상해보자면 이 세상의 기본 입자들은 모두 하루살이 같은 짧은 삶을 불안해하며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또 파괴되고 있는 셈이지요.

/ 네 번째 강의_입자


1960년대 히피들의 세상처럼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세상, 사물이 주인인 세상이 아니라 그러한 것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사건들로 인해 좌우되는 세상인 것입니다.

/ 네 번째 강의_입자


물리학과 철학에서 인간이 상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이 하늘과 땅에 존재한다고 해서 그리 놀랄 일은 아닙니다. 전자기파나 중성미자가 우주를 가득 채우고 있는데도 몇 년 전까지 우리는 ‘설마 이러한 것들이 존재할까.’라는 의구심도 품어본 적이 없으니 말이지요.

/ 네 번째 강의_입자


지구는 우리 누구에게나 특별한 존재이다. 그러나 거대한 은하와 별들의 바다에서 우리의 지구는 한없이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이다. 우주를 구성하는 무수한 형태의 벽화들 사이에서 우리의 지구는 수많은 점 중 하나일 뿐이다.

/ 네 번째 강의_입자


지극히 인간적이라고 해서 우리가 자연과 구분되는 것은 아니다. 이 또한 우리의 자연이기 때문이다. 자연은 여기, 우리 지구에서 자신의 일부들과 상관관계를 맺어 서로 영향을 끼치고 정보를 교류하면서 끝없이 조합하는 방식으로 존재한다. 자연은 우리로서는 상상조차 불가능한 형태로 무한한 우주 공간에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저 위, 우주에 정말 드넓은 공간이 존재하는데, 변두리 구석에 위치한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이런 은하에 무엇인가 특별한 것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어리석은 것이다.

/ 네 번째 강의_입자


오전에는 모든 것이 연속적인 곡선 공간이었던 이 세상이 오후에는 에너지 양자들이 불연속적으로 점프하는 평평한 공간이 되는 것입니다.

/ 다섯 번째 강의_공간 입자 


양자들은 그 자체가 공간이기 때문에 공간 속에 있지 않습니다. 공간은 각각의 양자들을 통합하여 만들어집니다. 이렇게 되면 다시 한 번 세상이 단순한 물체가 아닌 어떠한 관계처럼 보이게 됩니다.
하지만 이 이론의 두 번째 결과는 매우 극단적으로 나옵니다. 사물을 수용하는 연속적인 공간에 대한 개념이 사라지자, 사물과는 별개로 흐르는 기본적, 기초적인 ‘시간’에 대한 개념도 사라졌습니다. 공간과 물질의 입자를 설명하는 방정식들이 더 이상 ‘시간’의 변화를 수용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 다섯 번째 강의_공간 입자 


양자중력이론에서 설명하는 세상은 우리에게 익숙한 세상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습니다. 세상을 ‘수용’하는 공간도 없고 다양한 사건들이 일어나는 긴 시간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저 공간 양자와 물질이 계속 서로 상호작용을 하는 기본적인 과정만 있습니다.

/ 다섯 번째 강의_공간 입자 


루프양자중력이론이 맞는다면, 물질은 무한한 어느 한 지점에서 실제로 붕괴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무한한 지점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공간에서 존재하는 것은 유한한 영역뿐입니다.

/ 다섯 번째 강의_공간 입자 


이처럼 수명이 다한 별의 마지막 상태를 가상으로 설정한 것을 ‘플랑크의 별’이라고 부르는데, 여기에서는 시공간의 양자 파동에 의해 발생한 압력이 물질의 무게 균형을 맞춥니다.

/ 다섯 번째 강의_공간 입자 


과거와 미래의 차이는 열이 있을 때만 발생합니다. 과거와 미래를 구분하는 기본적인 현상은 열이 뜨거운 곳에서 차가운 곳으로 이동한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합니다.

/ 여섯 번째 강의_가능성과 시간, 그리고 블랙홀의 열기


열역학에서 말하는 가능성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우리의 무지와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것에 대해 완벽하게 알지 못할 수 있지만, 그에 대한 최대한, 혹은 최소한의 가능성은 부여할 수 있습니다.

/ 여섯 번째 강의_가능성과 시간, 그리고 블랙홀의 열기


우리는 존재하는 것을 현재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는 [더 이상]존재하지 않고 미래도  [아직]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물리학에서는 ‘지금’이라는 개념과 일치하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지금’을 ‘여기’와 비교해보지요. ‘여기’는 말하는 사람이 위치한 장소입니다. 예를 들어 멀리 떨어져 있는 두 사람이 각자 ‘여기’라고 말한다면 이것은 서로 다른 두 장소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여기’는 언급된 장소가 어디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는 말입니다.  [이런 종류의 단어를 전문용어로 ‘지시적’ 단어라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지금’도 말을 한 순간에 한정된 단어입니다.  [‘지금’도 지시적 용어입니다.] 어떤 사물이 ‘여기’에 없어서 존재하지 않는데 ‘여기’에 존재한다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지금’ 있는 것들은 존재하고 다른 것들은 아니라고 말하는 걸까요? ‘현재’는 ‘흐르고’있고, 사물들이 하나씩 차례로 ‘존재하게 만드는’, 이 세상에서 객관적인 그 무엇일까요, 아니면 ‘여기’처럼 주관적이기만 한 것일까요?

/ 여섯 번째 강의_가능성과 시간, 그리고 블랙홀의 열기


‘미켈라는 나보다 조금 더 일찍 이 기이한 세상을 떠났다. 이것은 아무 의미도 없다. 우리처럼 물리학을 믿는 사람들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구분하는 것이 고질적으로 집착하는 환상일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 여섯 번째 강의_가능성과 시간, 그리고 블랙홀의 열기


우리 역시 그저 양자와 입자로만 만들어졌을까요? 그렇다면 각자 개별적으로 존재하고 스스로를 나 자신이라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의 가치, 우리의 꿈, 우리의 감정, 우리의 지식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요? 이 거대하고 찬란한 세상에서 우리는 대체 무엇일까요?

/ 마지막 강의_우리, 인간이라는 존재


나는 이 책에서 세상이 과학적 관점에서 어떻게 보이는지 설명하고자 했고, 그 세상 속에는 우리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 마지막 강의_우리, 인간이라는 존재


그렇다면 내가 결정을 할 때 결정을 하는 주체가 ‘내’가 되는 걸까요? 그렇습니다. 만약 ‘내’가 내 신경세포들의 총체가 결정하는 것과 다른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지 의문을 품는다면 그건 터무니없이 어리석은 일입니다.

/ 마지막 강의_우리, 인간이라는 존재


우리의 윤리적 가치와 열정, 사랑이 자연의 일부이거나 동물의 세계와 공유되고 있기 때문에, 혹은 수백만 년간의 인류의 진화에서 제한이 있다고 해서 진실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실질적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진실합니다. 윤리와 열정, 사랑은 복합적인 현실이고, 우리는 이러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눈물과 웃음, 감사와 이타주의, 믿음과 배신, 우리를 번뇌하게 하는 과거와 평온함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우리의 현실은 우리가 함께 구축한 공통의 지식이 교차하는 풍요로운 연결망을 통해 만들어집니다. 이 모든 것이 지금 우리가 설명하고 있는 자연 그 자체의 일부입니다. 자연에서 우리는 통합된 부분이자,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한 자연의 표현 방식 중 한 가지로 살아가는 자연의 일부입니다. 이러한 점이 우리에게 세상의 일들에 대한 지식을 쌓아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 마지막 강의_우리, 인간이라는 존재


우리는, 우리 개인의 죽음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으니 우리 문명의 몰락에도 그렇게 대처할 것입니다. 인간의 죽음이나 문명의 붕괴나 크게 다를 바 없지요. 그러나 최초의 문명이 몰락할 때와 똑같지는 않을 겁니다. 마야 문명이나 크레타 문명은 이미 과거 속에 묻혔습니다. 별이 탄생했다가 죽는 것처럼 우리도 태어났다가 죽습니다. 개인적인 죽음일 수도 있고 집단적인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수명이 짧은 우리 인간에게 생명은 소중합니다.

/ 마지막 강의_우리, 인간이라는 존재

 

 

 

📘  나인, 천선란

 

그렇게 여자는 자신이 말했던 것처럼 그 자리에 ‘브로멜리아드’ 화원을 개업했다. 한때 풀 한 포기 자랄 수 없었던 땅을 죽어 가던 식물도 다시 살릴 수 있는 기적의 땅으로 바꾸면서.


태어난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서 사는 것에 미련이 없던 미래는 그때부터 한 꺼풀씩 세상의 비밀을 벗겨 먹으며 묵묵히 기다렸다. 그러다 주워 삼킨 세상의 비밀 중 어마어마한 것이 있다면 꼭 서로 털어놓자고 약속했다. 그 자리에 함께 있던 현재도 약속에 동참했다. 믿기지 않을 진실이라도 일단은 서로 믿어 주기로.


나인은 덤덤하게 대답했다. 져도 눈물이 안 나요.

 

“꼭 질 때 눈물이 나야만 한다고 생각해?”

 

효정이 물었다. 나인은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이거 말고 다른 게 있는 것 같아. 막 눈물이 나고 그런 일. 안 되면 열 받고, 분하고, 내가 너무 싫고, 그렇지만 결국 하게 되는 그런 일.”

 

사람들은 그걸 간절하지가 않은 것이라고 표현했다. 나인과 대결했던 어떤 선수들은 지면 나인이 억지로 메달을 빼앗은 것처럼, 그렇게 무언가를 뺏긴 것처럼 투구 사이로 흐른 땀만큼이나 굵은 눈물을 뚝뚝 흘렸는데 나인은 어째서인지 눈물이 나지 않았고, 그러다 언젠가 그 간절한 눈물에 지고 말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우리는 그냥 딱 보면 알아. 아, 쟤도 바깥에서 왔구나. 신호등이 깜빡일 때 걷지 않는 사람들 있잖아. 버스를 탈 때 노인이나 아이를 위해 한발 양보하거나 지하철에서 사람이 다 내려야만 타는 사람. 이상하리만치 느긋하게 질서를 지키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외계인이야.

 

왜?

 

인간들이 정해 둔 규칙을 지키는 거지. 외부인이니까.


순간 그들이 지었던 숱한 표정이 전부 통제권 밖에 있었다. 어찌할 수 없는, 본능적인, 막을 수 없는. 하여간 그런 의미였다. 찰나의 표정이란 감정을 가장 진솔하게 비추는 호수의 수면 같은 것이다. 조그만 충격에도 금방 흩어지고 만다. 바람조차 불지 않는 한때, 잠시 생겼다 사라지는 마법 같은 것이다. 그러니 원망할 수가 없다. 미워할 수도 없고. 어쩌겠는가. 안쓰럽다는 걸, 불쌍하다는 걸, 가엾다는 걸, 애잔하다는 걸. 때때로 어떤 이들의 표정은 파도같이 잔잔하게 밀려오다 부서지고 흩어진다.


소수가 다수를 이기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지겹고, 지긋지긋하고, 진절머리 나게 구는 것이라고. 그게 지모가 살아오며 깨달은 중요한 이치 중 하나였다.


“그냥 타이밍의 문제잖아. 아직은 아닌 것뿐이지, 영영 아닌 건 아니잖아. 그러니까 걔도 언젠가 말해 줄 거고, 너도 언젠가 말해줄 거잖아.”

 

친구가 문득문득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담 하나를 넘은 것 같다. 다시 넘을 수 없는 담을.

 

“나도 언젠가 말하게 될 거고.”


강한 힘을 가지면 그런 선함도 함께 깃드는 걸까. 아니면 그런 용기를 가지고 있기에 강한 힘이 자리를 잡을 수 있는 걸까. 인과를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지모는 후자이기를 바랐다. 강한 힘을 가진다고 해서 선함이 무조건 깃드는 건 아닐 수도 있으니까. 올바르게 쓰일 줄 모르는 힘은 재앙과 다르지 않았다.


빨갛게 변한 눈에서는 역시나, 언제나 그렇듯, 늘 그래 왔듯 투명한 눈물이 흘렀다. 넋이 나간 표정으로 박원우가 묻힌 자리를, 이년 전 자신이 박원우를 묻은 자리를 가만히 바라보던 권도현은 점이 지대에서 한 발자국씩 뒤로 물러나 죄책감이 있는 세계로, 괴로움이 가득한 현실로, 거대한 슬픔과 잔인한 현실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다행이 악마가 되지 않았고, 불행하게도 인간으로 돌아왔다.


팔 년 전 한적한 공원 벤치에 앉아 목 놓아 울다 문득 나무와 들풀이 듣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 나무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울음을 들었을까 고민도 했다. 이 이야기는 아마도 그날로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  세상에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어, 허유정

 

‘세상에 해가 되지 않는 건, 결국 나에게도 무해한 일’


지난날 내가 환경에 관심을 두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그저 나와는 먼 일 같아서였다. 몇 년 전만 해도 ‘환경보호’란 내게 그런 일이었다. 어느 단체에 소속된 누군가가 하는 일, 거리에서도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대단한 사람의 일. 쓰레기 하나 허투루 만들지 않는 완벽한 사람들의 일, 그런 일 말이다.

그때를 떠올리니 말해보고 싶었다. 환경을 위한다는 건 특별한 사람들만의 일은 아니라고. 나처럼 평범한 사람들도 즐기고 배우며, 때로는 실수도 하며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사람은 아파야 그제야 뒤를 돌아본다.


나뿐 아닌 모두, 그리고 현재만이 아닌 미래를 위해 기꺼이 불편함을 선택하는 사람들. 이 사람들의 세계에는 따뜻한 선의가 가득해 보였다. 그들은 대부분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인상을 가졌고, 소신을 지키며 사는 단단한 기품도 느껴졌다. 나는 이런 인상을 가진 사람들을 좋아한다.


이건 북극곰과 고래의 일만이 아니었다. 이건 내 이야기, 내 조카의 이야기, 앞으로 태어날 내 아이의 이야기, 우리 모두의 이야기였다.


어차피 완벽한 실천은 불가능하고, 나 좋자고 하는 일인데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또 쓰레기를 만든 날은 ‘쓰레기 만들었다’고 솔직하게 말해야겠다 생각했다. ‘환경보호’라 하면 사람들은 뭔가 무겁고 딱딱한 이미지를 생각한다. 이런 편견은 환경과 관련된 실천을 더 어렵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 그래서 평범한 사람이 ‘할 수 있는 만큼 하는 실천’도 하나의 노력이란 걸 보여주고 싶었다.


‘지금까지 나는 휴지가 필요해서 쓴 게 아니라, 곁에 있으니 썼구나!’


“하면 할수록 더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긴 해.”


사람은 그 누구의 인정보다, 자신의 인정이 필요하다는 걸 그때 알았다. 쓰레기를 줄이다 보면 종종 그런 생각을 한다.

‘그래도 폐만 끼치는 건 아니라 다행이야.’

여전히 지구에 빚을 지고 살아가지만, 할 수 있는 만큼이라도 해보려는 작은 노력. 이 세상에 필요한 일을 하나라도 했다는 생각이 들면, 그날 하루는 기분 좋게 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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