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사소하고 다양한 이유가 쌓이고 쌓여서 누군가를 좋아하게 된다고들 한다. 그 이유들을 하나하나 나열할 수 없을 때, 가끔 본인조차 그것을 구분해 낼 수 없을 때 사람들은 ‘이유 없이 좋다’라고 말한다고.
어떤 말이든, 설령 그게 나를 부끄럽게 하는 말이라도 말할 수 있을 때 말해야 해.
‘죽지 말고 살아.’
무신경한 말투였는데 그 말을 듣자마자 수연은 다짜고짜 눈물이 날 뻔했다.
‘살다 보면 너를 살게 하는 사람을 만나게 될지도 모르잖아. 지금은 없더라도.’
정말로 살다 보면 자신을 전부 이해해 주는 누군가를 만나게 될까. 궁금했지만 수연은 묻지 않기 위해 햄버거를 먹었다. 기대하고 싶지 않았다. 그레타의 말을 부질없는 위로쯤이라 생각했는데 지나고 보니 수연은 그 순간 그레타의 말을 간절히 믿고 있었다. 믿고 있었으니 산 것이다.
“누군가를 미워한다는 건 정말 고통스러워. 멈출 수도 없고, 스스로를 괴롭히기 적당한 방법이야.”
“언젠가 인간들도 회색늑대라는 단어를 잊어버릴까?”
“단 한 사람이라도 기억하고 있다면 잊히지 않을 거야.”
“누구한테 인정받을 필요 없고, 어떤 상황에서도 폭력은 답이 될 수 없다는 걸 알려 주신 분이에요.”
‘그런 건 의도한다고 해서 나타나는 게 아니야. 어쩔 수 없이 나오는 거지. 누군가를 아낀다는 마음은 이런 식으로 허락도 없이 마구 새어 나와. 눈빛으로, 손끝으로, 혀끝으로….’
“그럴 때는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풀리는 경우도 있고, 아니면 누가 용기를 내서 푸는 방법도 있어. 그렇지만 만일 그 일이 너를 너무 괴롭히고 상대방이 너를 너무 힘들게 한다면 굳이 노력하지 않고 떠나보내도 돼.”
“….”
“그 사람을 떠나보내도 살면서 누군가를 또 만나게 될 테니까. 한 사람에게 너무 의지하는 것은 좋지 않아. 누군가를 좋아하고 의지하고 싶은 마음 바닥에는 외로움이 깔려 있으니까. 누구에게나. 모두가 각자 외로움을 깔아 두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외로움을 타인으로 치유할 수는 없단다. 다만 누군가를 만나면서 나 하나만 외로운 게 아니라는 위안을 받을 뿐이지.”
“사람은 1이 아니라 0이야. 0과 0은 만나서 아무것도 되지 못하지. 단지 0 옆에 또 다른 0이 있을 뿐이야. 그러니까 인정은 하되, 그 외로움에서 지지 않으면 돼. 언제나 네 안에서 치열하게 싸우면서 외로움을 잘 끌어안아 주면 된다.”
“사는 게 못 견디게 힘든 적도 많았고 지긋지긋하고 고통스러운 적도 많았지만 그래도 살아 있는 거였다고. 그래도 살아 있으니까 이제 지나면 또 좋은 일이 있겠지 생각하게 됐어.”
가장 강력한 흉기는 마음이다. 다른 것들은 단순한 도구에 불과했다.
“마음이 여리니까 경찰을 해야겠다고 했어요. 경찰은 세상 그 누구보다 약자 편에 서야 하는 직업이니까, 살고 싶지 않다는 저한테 경찰을 하라고 하더라고요. 경찰이 돼서 나처럼 소외되고 힘든 사람들을 도와주라고. 나한테 상처 준 사람과 같은 사람은 되고 싶지 않을 테니까, 그렇게 폭력과 차별로부터 방패가 되라고요.”
“인간은… 당신처럼 그렇게 오래 담아 두지… 않아. 그래야 계속… 살아갈 수 있으니까….”
뱀파이어의 반세기는 인간의 5년 같을 수도 있다. 인간에게는 아득히 먼일이 되어 버린 이야기가 저 뱀파이어에게는 어제 일처럼 생생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살아가는 동안 인간은 과거에 묶여 있지 않는다는 점이다. 인간은 반드시 벗어난다. 잊고, 묻고, 달래며 나아간다. 그리하여 또 다른 세계를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