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앞두고 그 애는 말했어. ‘파히라. 내가 당신을 한 번만 안아봐도 될까요? 딱 한 번만요.’ 나는 팔을 벌려 그 애를 안았어. 끝까지 안고 있었지. 비명을 참고 눈물을 참으며, 피부 표면을 칼로 베어내는 것 같은 통증을 느끼며. 고통을 주지 않는 것이 사랑일까, 아니면 고통을 견디는 것이 사랑일까 생각하면서. 의사가 결국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는 나를 그 애에게서 떼어냇을 때 나의 얼굴은 괴로움으로 마비되어 있었고 시트는 눈물범벅이 되어 있었어. 그리고 그 애는 이미 십 분 전 숨을 거둔 상태였지. 그때 나는 불행히도 나에게 고통이 곧 사랑이라는 것을 알았어.”
파히라는 적막한 그의 집을 돌아보며 말한다.
“그래도 그 사랑을 감수하고 싶은 사람이 있었지.”
짧은 침묵 끝에 파히라가 덧붙인다.
“이제는 아니야.”
/ 선인장 끌어안기
“우리의 현실이 정말로 같을까? 그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것만이 진실한 대화일까? 너는 그것을 어떻게 확신하지? 어떤 사람은 수요일에서 바닐라 냄새를 맡고, 또 어떤 사람은 남들이 결코 구분하지 못하는 여러 가지 빨간색을 구분하지. 우리는 바다를 유영하는 고래의 관점을 상상하지 못하겠지. 자신의 수천 배나 되는 몸집을 가진 동물에 기생하며 살아가는 진드기의 관점을 헤아려볼 수도 없겠지. 평생을 살아도 우리는 타인의 현실의 결에 완전히 접속하지 못할 거야. 모든 사람이 각자의 현실의 결을 갖고 있지. 만약 그렇게, 우리가 가진 현실의 결이 모두 다르다면 왜 그중 어떤 현실의 결만이 우세한 것으로 여겨져야 할까?”
/ 데이지와 이상한 기계
“그렇다면 나를 기다릴 게 아니라, 내가 필요 없어진 것 아니야?”
“왜 그렇게 생각해?”
“나는 상징에 불과하잖아. 소망이 만들어낸 상징이고, 현실은 저 바깥에 있지.”
“너는 소망의 집합이 아니야. 소망은 그 방 안에 있던 것들이지”
/ 소망 채집가
“아무도 이런 미래를 기다리지는 않았을 거야. 왜 나를 공개하려고 하지? 어차피 당신들은 상징이 아니어도 경험하게 될텐데.”
“사람들은 이제 곧 2030년을 맞이하지만 그게 무엇인지 아직 몰라. 그래서 네가 필요해”
“나는 엉망진창이고, 내가 무엇인지 확신이 없어.”
“다들 알아.”
그가 말했다. 그는 천천히 나를 기다렸다.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슬퍼보이기도 했고 다정해 보이기도 했다. 처음 나를 설계했을 때 그는 나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예측했을까.
“그래도 이제 가야 해. 알면서도 다들 너를 기다리니까.”
/ 소망 채집가
시간 여행은 발라드 때문에 시작되었다.
/ 애절한 사랑 노래는 그만
로맨스는 시대의 발명품. 모든 사랑이 애절한 건 아니지만, 함께 공유할 애절한 사랑의 기억이 사람들에게는 필요한 모양이다.
/ 애절한 사랑 노래는 그만
개별적 개체성, 그게 인간일 때의 나를 가장 불행하게 만들고 외롭게 만들었어. 동시에 나를 살아가게 했지. 개별적 존재이면서도 동시에 전체의 일부라는 건 모순이 아니야. 아니면, 전체라는 건 애초에 없는 것일지도 모르지.
/ 늪지의 소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