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도를 기다리며, 사뮈엘 베케트

 

에스트라공 (한참 생각하더니) 그게 바로 정반대라는 거냐?

블라디미르 기분 문제지.

에스트라공 성격 문제다.

블라디미르 그렇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에스트라공 날뒤어봤자 소용없는 일이지.

블라디미르 타고난 대로니까.

에스트라공 꿈틀거린다고 별수 있니?

블라디미르 근본이야 달라지지 않는 거지.

에스트라공 별수없는 거야. (먹다 남은 당근을 블라디미르에게 내민다) 마저 먹을래?


에스트라공 잠깐.

블라디미르 춥다.

에스트라공 우린 서로 떨어져 있었던 편이 낫지 않았을까? (사이) 어차피 같은 길을 걷게 돼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

블라디미르 (화도 안 내고) 그야 알 수 없지.

에스트라공 그래, 알 수 없지 아무것도.

블라디미르 헤어지는 게 낫다고 생각되거들랑 언제라도 헤어질 수야 있지.

에스트라공 이젠 그럴 필요도 없다.

 

침묵.

 

블라디미르 하긴 그래, 이제 와서 그럴 필요는 없지.

 

침묵.

 

에스트라공 그만 갈까?

블라디미르 가자.

 

두 사람 다 움직이지는 않는다.


블라디미르 고도 씨가 보낸 거지?

소년    네.

블라디미르 오늘 밤에는 못 오겠다는 얘기겠지?

소년    네.

블라디미르 하지만 내일은 온다는 거고?

소년    네.

블라디미르 내일은 틀림없겠지?

소년    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말이다. 말은 동작을 유발하고 살아있음을 증명한다. 그리고 그것이 말해질 때 비로소 구원이 된다. 이 혼돈과 불모의 세계에서 나날이 함몰되어 가는 상실감을 극복하기 위해서, 기다림을 죽이기 위해서 그들은 끊임없이 말한다. 생각함으로써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말함으로써 존재한다.

 그들은 기다림에서 오는 고통과 절망을 자살로 해결하지는 않는다. 목을 맬 수 있는 나무가 눈앞에 있는데도 그들은 시도하지 않는다. 다시 지껄임으로써 기다림을 유지하고 내일을 기약한다. 두 어릿광대는 서로를 독려한다. 〈살아 있음을 실감하기 위해서……〉, 〈뭐든 말을 해봐〉, 〈지금 찾고 있는 거야……〉, 〈기다리면서 뭘 하지?〉, 〈말을 하니까 시간이 잘 간다〉…….

 

 

 

yunico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