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다, 소녀 혹은 키스, 최상희

나는 잠시 세계와 마주 보았다.
그 순간 털어놓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매일 밤 나를 두렵게하는 것은 천재지변과 전쟁과 핵폭발, 외계인의 침공이 아니라 깊은 한숨 소리와 소리 죽인 슬픔이라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것만큼이나 견디기 힘든 것은 사랑하는 사람이 조금씩 무너져 가는 것을 지켜보는 일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 방주


그의 입에서 나는 민트 향이 되고 싶어. 그렇게 생각한 순간 정말로 되고 말았다. 형태도 없고 무게도 없고 존재감도 없어 아무도 의식하지 못하지만 멈추면 죽고 마는 것.

/ 한밤의 미스터 고양이


도대체 왜일까. 사랑하게 만들었으면서 그 사랑이 서로를 향하게 만들지 않은 건 무슨 이유일까. 왜 우리는 외로움마저 서로 어긋나 있는 걸까?

/ 한밤의 미스터 고양이


이 밤, 무수한 외로움 속에 그와 나는 각각의 외로움의 모양을 하고 있어 나는 조금 더 외로워졌다. 여기저기 외롭고 외로운 존재들뿐이다. 나는 울고 싶어졌다.

/ 한밤의 미스터 고양이


그때 알았다. 기적이란 조롱거리를 가리키는 말이라는 것을.

/ 수영장


내가 보고 싶었던 것은 너였다는 것을 말할 기회가 이제 내게는 영영 없다.

/ 수영장


부유하는 움직임 때문에 해파리는 동물성 플랑크톤으로 분류된다. 플랑크톤의 어원은 그리스어 '플라네테스'에서 왔다고 한다. p. l. a. n. e. t. e. s. 나는 알파벳 하나하나를 발음해 본 적이 있다. 알파벳 하나하나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하지만 그것을 모아 보면 뜻을 갖게 된다. 방랑자. 그것의 의미이다.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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